작가노트
200 x 100 cm (h x w)

나의 작업은 세계와 내가 만나는 지점인 일상을 기반으로 한다. 세계에 반응하는 나의 작은 숨소리, 대화, 행동 등 소소한 순간에 담겨지는 인간본성을 추상화 하여 표현하고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작은 창조행위가 파동을 일으키고 공동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나의 작업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나의 본성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인류의 일상을 멈추게 한 세계사적 재난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간절함을 증폭시키고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였다. 반복되는 일상과 일상성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나의 관심은 타자, 공동체, 개인과 사회의 관계로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의 이면을 보는 습관도 생기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가면 서 있는 점원들의 부은 발이, 고기를 먹으면서도 죽음을 앞에 두고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떠는 동물들이 떠오른다.

나와 나의 지인들 또는 먼 곳의 누군가의 일상은 어떤 부조리를 마주하거나 목격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은 우리의 일상을 점거하고 지배한다. 누군가는 저항하고 누군가는 동조하거나 누군가는 의식하지 못한 채 편승하며 또 다른 부조리를 낳고 있다. 나는 화려함 또는 안온함으로 위장된 일상의 겉면을 묘사하기보다 부조리한 제도와 관습 안에 놓인 일상의 면면에 대한 사유를 나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지난 작업들에서 ‘창조성’과 ‘야성’을 무기로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은유적 구상 또는 물성을 끌어와 반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다운 일상회복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면 현재의 작업은 부조리가 만연한 일상에서 선함으로 회귀하려는 인간본성과 부조리한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 창조성의 빛을 한지와 먹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빛은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두운 부조리를 대면하는 순간, 창조성은 나의 내면을 비추어 선함을 이끌어내어 일상을 새롭게 하다. 나아가 나의 빛은 누군가의 빛들과 연대하며 어두움 사이를 유유히 흐른다. 희미하게 숨어 있는 듯 보이지만 또다시 선명하게 이어지는 빛의 흐름은 인류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 본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를 탐색해오다 지난해 봄에 한지를 만났다. 연약한 물성에 어떤 결의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나의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본성의 모습이 어떤 형태나 색으로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한지 안에 녹아 있는 듯 했다.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어 고요히 퍼질 때 얇고 가벼운 일상의 순간들이 아름답게 담겨지는 듯 보이면서도 시간과 경험에 따라 깊어지는 강인한 내적 힘이 피어오르는 듯 했다. 먹물이 한지를 투과해 정신의 기저에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때 한지와 먹물과 나는 서로를 받아들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앞선 예술가들이 한지를 매체로 시대적 공감과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그들과 달리 한지를 작품을 위한 매체가 아닌 소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다. 어느새 한지는 내가 마주하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이 된 것이다. 나는 한지에게 반응하고 한지는 나에게 반응한다. 그리고 우리는 부조리의 세계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역동하는 창조적 생명력이 숨 쉬는 일상의 단면을 함께 그려 나가고 있다.

Exhibited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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